- 싼타 바바라에 처음 부임했을 때 LA에서 출석하는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LA 어느 교회에 교적(敎籍)을 두신 분이었는데 LA에서 싼타 바바라에 오려면 거의 2시간이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그는 교회 주보에 ‘시무장로’로 이름으로 올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배출석은 두달에 한번 정도였습니다. 이런 상황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서 하루는 예배 마친 후 장로님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장로님, 장로님은 우리교회 시무장로님이십니다. 그런데 시무장로가 주일예배에 참석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랬더니 “LA에서 어떻게 매 주일 올라옵니까?” “그럼 시무장로라는 이름을 빼는 게 어떻겠습니까?” “내가 매주일 싼타 바바라로 올라온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그래서 격월로 한번 씩 오는 장로를 못오게 하면 어떻게 합니까?” “오지 말라는 게 아니라 ‘시무장로’라는 명칭을 빼자는 겁니다. 주일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시무장로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장로님은 얼굴색이 변하고 말이 빨라지고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이름을 올려 놓아야 간혹 예배도 참석할 수 있고, 그래야 교회를 도울 수도 있고, 그래야 목사님의 목회를 도울 게 아닙니까?” “장로님, 하나님에게 있어서 최고의 기쁨은 예배출석이라 생각하는데 뭘 돕겠다는 겁니까? 그리고 장로님이 저의 목회를 돕겠다고 하셨는데 시무장로가 목사에게 있어서 예배참석하는 그 이상의 도움은 없습니다. 우리교회 시무장로로 계시겠다면 거리를 불문하고 매주일 예배에 참석하시고 그럴 수 없으면 이름은 빼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대화를 나누는 장로님은 내가 어릴 때 자라난 고아원의 원장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목사와 장로간의 대화였지만 이제부터는 목사와 장로의 대화가 아니라 옛날의 관계로 돌아가서 원장과 원아의 상태에서 대화가 이뤄졌습니다. “야, 유목사. 너 왜 그러니? 내가 있어야 너에게 도움이 될 게 아니냐? 매주는 못오더라도 시간이 되면 와서 돕겠다는데 왜 그러니?” “제가 그걸 왜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시무장로가 이름만 얹어 놓고 주일 날 다른 교회에 가 있으면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러니까 매주 참석하지 못하시겠다면 시무장로라는 이름은 빼겠습니다.” 장로님은 화를 참지 못했고 대화는 더 이상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얼마 후 그 교회에 사표내고 나왔기 때문에 ‘시무장로’에 대한 시비는 더 이상 없었습니다. - 연합감리교회(United Methodist Church)는 직분제도(집사, 권사, 장로)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인연합감리교회의 문화적인 배경을 이해한 UMC는 행정적인 문제에 차질이 없는 한도 내에서 한인교회의 특성을 살려 ‘신령상 직분제도’를 허용함으로 직분제도를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UMC의 행정에는 영향을 미치지 아니함을 원칙으로’ 하는 한인교회만의 제도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신령상 직분의 정년은 70세로 했습니다.
어느 교회에 부임했을 때 그 교회엔 시무장로가 계셨는데 그의 나이는 74세였습니다. 그런데 아직 은퇴를 하지 않고 시무장로로 있었습니다. 전임자들이 이 문제를 처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부임했습니다. 교회 규모가 작아서 처리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나는 이 문제를 그냥 둘 수가 없었습니다. 한인연합감리교회의 신령상 직제 내규(內規)를 없애버리든지 아니면 우리가 만들어 놓은 내규를 지키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장로님을 개인적으로 만나 ‘한인연합감리교회의 신령상 직제’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고 우리의 규정대로 은퇴하시면 좋겠다는 나의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런다고 장로님의 위치가 변하는 게 없다는 것도 설명했습니다. 단지 한인연합감리교회의 내규에 따른 원칙은 지키자면서 은퇴를 종용했습니다. 장로님도 흔쾌히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교회창립주일 행사 때 은퇴식을 갖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장로님이 ‘은퇴 당하는 것’으로 생각하셨는지 교회분위기가 좋지 않게 흘러갔습니다. 심지어 임원회의 때 장로님이 교인들 앞에서 반기를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담임하셨던 목사님들은 아무 문제 없이 지나갔는데 왜 목사님은 나를 은퇴시키려 하느냐?”면서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나왔을 때 참으로 민망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로님과 직접 만나 이 상황을 설명하고 은퇴를 약속했던 내용을 상기시킴으로 이 문제는 더 이상 확산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은퇴하기 한달 전, 교회행사를 앞두고 운영위원회가 모였는데, 그럴 리가 없었겠지만 사전에 장로의 은퇴문제에 대해 말을 맞추고 들어왔는지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한 사람이 장로은퇴의 부당함에 대해 먼저 발언했습니다. 이 발언에 두 사람이 동조하면서 격한 분위기가 연출되었습니다. “이 작은교회에서 은퇴는 무슨 은퇴입니까? 굳이 장로님을 은퇴시킬 필요가 있습니까?” 그들의 발언은 목사의 입장을 매우 곤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한인연합감리교회의 직제에 대해 다시 요약해서 설명하고 “이것은 우리가 지켜야할 법입니다. 이 문제는 이미 장로님과 의견을 나누었고 장로님이 흔쾌히 은퇴하기로 약속했던 것”이라고 하자 “뭘 그렇게 원칙을 따지십니까? 우리교회 형편이 우선이지 우리교회에 무슨 법이 필요합니까?”라면서 은퇴 번복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왔습니다. 이때 말 없이 듣고만 있던 권사님 한 분이 발언을 했습니다. “지금 장로님의 은퇴를 반대하시는 여러분들은 유목사님이 부임하시기 전만 해도 장로님을 은퇴 시키지 않는다고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신 분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이번에는 한인연합감리교회 규정대로 은퇴 하시겠다고 목사님 앞에서 약속까지 하신 장로님의 뜻을 번복시키려 하십니까?”
그 권사님의 발언이 끝나자 지금까지 팔장을 끼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침묵을 지키고 있던 장로가 “그럼, 목사님의 의사대로 은퇴하겠다.”는 발언으로 장로의 은퇴문제는 이것으로 매듭 짓게 되었습니다. 왜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세운 원칙을 지키려는 자와 그 원칙을 무시하는 이들 간에 빚어진 현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우리가 만든 원칙을 없애버리든지 아니면 그 원칙에 충실하든지 해야 할 텐데 말입니다. - 감독의 파송으로 새로운 교회에 부임했을 때 그 교회에 속한 어느 장로가 자신의 사업체를 정리하면서 일정한 금액을 헌금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십일조도 아니고 감사헌금도 아니고 특별헌금도 아닌 ‘장학금’이었습니다. 내가 부임하자 몇명의 교인들이 장학금으로 인해 교회 안에서 빚어지는 문제들을 알려 주었습니다. 장학위원회가 조직되어 있고 장학금 운영에 대한 지침도 마련되어 있었지만 그건 무용지물이었습니다. 장로가 장학금을 ‘내 돈’으로 생각했는지 장학위원회에서 결정된 사항을 일방적으로 뒤집고 장학금 액수도 공평하게 지급되는 게 아니라 임의대로 차별을 두고 지급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때론 그 장학금이 교회재정으로 지출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부족한 교회재정을 ‘내가 낸 장학금으로 충당’되는 것 때문에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 교회 부임했을 때 듣던 대로 장학위원의 결정을 무시하고 장로가 임의대로 장학금을 지불하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감리사님에게 찾아가서 이 장학금으로 인해 교회 내 갈등이 있다는 사실을 보고 했는데 감리사님으로부터 적당한 때 적절히 대처하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 장로를 만나 장학금문제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이 장학금의 배경과 사용되어지는 용도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있었고 장학운영위원회는 있으나마나한 위원회인만큼 이제부터 이 장학금에 대해 분명히 하자고 제안 했습니다. “장로님은 이 장학금에 대해 손을 떼시고 장학위원회에 맡겨 운영하게 하든지 아니면 장로님 개인 돈으로 생각하신다면 이 돈을 인출해서 개인적으로 장학사업을 펼치시라” 했더니 그는 남아 있는 장학금을 인출해 가는 것으로 교회 내 갈등 요인이었던 장학금문제가 정리되었습니다.
이미 오래 전의 일들이지만 융통성 없는 나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고 ‘목회할 줄 모르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 것 같아 나 자신에 대해 좀 민망한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 내가 무슨 ‘원칙주의자’라는 어마무시한 그런 것도 아닌데 왜 이런 문제를 그냥 못 넘어 가는지 내가 나 자신에 대해 궁금해집니다. 그러나 적어도 나 같은 우직한 목사 하나 정도는 있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스스로 위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양보 대신 오히려 더 강력히 원칙을 따르려 합니다. 아니면 원칙을 없애든가…
유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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