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해 한국을 방문하여 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집회를 인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식사문제였습니다. 나는 간단한 우거지 국이나 올갱이 국, 혹은 잔치국수 같은 것을 먹었으면 정말 좋겠는데 ‘강사 목사님’이라면서 특별대우를 해 주시는데 식사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한끼 정도는 건너뛰고 간단하게 먹었으면 좋겠는데 식사대접하시는 분들의 짜여진 순서 때문에 건너 뛸 수도 없었고 쉴 수도 없었습니다. 부흥강사를 대접하시는 그분들의 고마움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하루에 세끼, 그것도 고급음식만을 대접받았는데 어떤 면에선 고문(?) 당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집회가 끝나자 우선 그 식사 스케쥴에 대한 해방감에 하늘을 날 것 같았습니다. 이젠 내 마음대로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었습니다. 먹고 싶지 않으면 안 먹으면 그만이었습니다. 동대문시장과 청계천 일대를 구경하러 나갔습니다. 노점 상인들을 비롯해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미국과는 판이한 환경 속의 생활로 즐거움이 더해지는 순간들이었습니다. 길바닥에 앉아 천원짜리 잔치국수도 먹어보고 시장바닥에서 파는 도넛과 커피, 그리고 떡볶기와 오뎅 등등을 먹으며 하루를 자유롭게 지냈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건널목에서 잠시 신호대기 중이었는데 옆을 보니까 붕어빵을 구워 파는 노점상이 있었습니다. 학창시절에 먹어도 먹어도 또 먹을 수 있었던 게 붕어빵이었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옛날을 생각하며 먹어보았습니다. 5마리에 천원이었습니다. 배도 부르고 해서 두 마리만 먹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마음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빵을 굽는 사람은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분이셨는데 빵을 먹는 동안 이 아저씨가 빵을 구우면서 혼자서 무슨 말을 하는지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저씨가 빵을 구우며 중얼거리는 그 말을 관심 있게 들어보니까 이 양반이 내가 빵을 먹는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전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완도사람인데 6살 난 아들이 간염으로 죽어가고 있었고, 둘째 아들 역시 전염이 되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도 전염이 되어 3부자가 한꺼번에 죽어 가는 그런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치료할 돈도 없을 뿐 아니라 아무에게서도 도움 받을 길이 없어 이렇게 버려진 상태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으로부터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함과 동시에 우리 3부자의 병도 나았습니다.”
그러면서 빵을 사 먹고 있는 내가 자신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 주니까 이젠 정확한 말로 말을 계속 이어나갔습니다. “선생님, 나는 원래 지옥 갈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겸손의 말이 아니라 정말 나는 지옥 갈 사람이었습니다. 사람 때리기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여자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나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의 음성은 간혹 떨리기도 했습니다. 진지하게 자신의 말을 청취해서 그런지 전도하는 그의 눈가는 촉촉이 젖어 있었습니다. 그의 간증은 진정성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한 시간 정도 그는 간증하고 나는 서서 그의 간증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간혹 빵 사러 오는 손님들에게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예수 믿으십니까? 안 믿으면 예수 믿으세요.” 내가 볼 때 그 아저씨는 빵을 파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전도하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아저씨, 이 장사로 생계가 유지됩니까?”라고 물었더니 “완도에서 서울로 올라 온지 5년이 되었는데 그 동안 이 장사해서 식구 모두가 먹고 살았고 지금은 150만원이 든 저금통장이 있다”면서 뿌듯해 했습니다.
그래서 “150만원이 큰 돈입니까?”라고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나는 이 돈이 있으므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라고 했을 때 150만원에 대한 그의 표현은 정말 부자로서 하는 말로 들렸습니다. “아저씨, 만약 이렇게 장사하시다가 아저씨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땐 누가 아저씨를 도울 것입니까?”하고 물었더니 “그런 것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니까요.” 그의 이 같은 고백은 붕어빵을 굽는 그 아저씨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는 하나님에 대한 위대한 신앙고백이었습니다. 구워 놓은 빵을 모두 챙기고 수고하시라는 인사와 함께 그 자리를 떠나려는데 “혹시 목사님이십니까?”라고 묻기에 목사의 신분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한국교회 교인들에게 은혜 끼치러 갔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을 만난 그날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의 기초를 하나님께 두고 풀빵을 구우며 사는 이 사람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나는 부족한 것이 없다’고 고백한 다윗 왕과 다름이 무엇입니까?(시23:1) 물론 신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두 사람이 가진 ‘신앙의 본질’은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삶의 기초를 하나님께 둔 사람들은 신분여하를 막론하고 그들 모두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일 것입니다.
유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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