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타 바바라에서 목회하던 교회에 사표를 내고 엘살바도르 여자와 결혼한 김집사님과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은 금식기도로 해결했습니다. 이민목회하면서 한 가지 독특한 원리를 깨달았는데 그것은 ‘내가 굶게 되었을 때 굶으면(금식기도) 안 굶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를 잃어버리고 길바닥에 나 앉았을 때 ‘먹을 것을 위해’ 40일 금식기도하기로 했습니다. 정해진 날짜가 다가올 즈음 한번 만나 인사를 나눈 어느 집사님의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개척교회 하시는 목사님을 돕고 싶다’는 전화였습니다.
나의 현 상황을 확인한 집사님이 구체적으로 액수까지 정해서 돕겠다고 했는데 지금부터 거의 30년 전, “목사님, 한달에 1,500불 씩 보내드리면 도움이 좀 되시겠습니까?” 이 전화를 받을 때 무어라 말을 해야할지 그저 유구무언이었습니다. 그 전화를 받은 다음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큰 부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처자식의 얼굴을 들여다 보고 ‘내일은 무엇을 먹어야 하나’하는 문제로 걱정할 때의 일이었으니 그 고마움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 금식기도를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경제적은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그저 놀랍고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이 전화를 받았을 땐 싼타 바바라에서 약 1,000마일 떨어진 곳에 계시는 선배목사님의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마지막 문을 닫고 집을 막 나서기 직전에 걸려 온 전화였습니다. 이번 여행은 경비를 아끼기 위해 중간에 야영(野營)하기로 하고 모든 장비를 차에 실어 놓았는데 차에 앉아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 아내에게 “웅이 엄마, 이번 여행은 야영하지 말고 호텔에서 묵자!”고 하자 영문을 알지 못한 아내에게 “하나님께서 아직 금식기도를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기도 응답하셨다.” 면서 가면서 이야기하자며 텐트며 야영장비를 모두 내려 놓고 출발했습니다.
그때의 여행은 참으로 즐거웠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선배목사님을 만나 뵙고 싼타 바바라를 출발하기 직전 선교비에 대해 전화받은 내용을 말씀드렸더니 “유목사의 말을 듣고 난 정말 큰일 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500불이 뭐가 그리 큰 돈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할까? 그런데 나의 삶의 풍요로움 때문에 유목사님이 갖는 그런 기쁨과 감사와 감격이 없다는 게 소름이 돋을 지경입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목사님은 그나마 넉넉한 가운데서 목회하셨기 때문에 아마 이런 반응을 보이신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하와이에서 목회할 때 한국에 집회를 인도하기 위해 다녀왔는데 한국으로 떠나기 전날 어느 집사님이 필요한 곳에 써 달라면서 캐쉬 1,000불을 주고 갔습니다. 그래서 내가 집회했던 그 교회 담임목사에게 우리교인이 주신 이 선교비를 누구에게 드리면 좋을지 물어 보았는데 그 목사님의 안내로 어느 선교단체를 방문해서 담당목사에게 그 선교비를 드리고 우리교회 주소와 그 집사님의 이름도 함께 드리고 선교비를 받았다는 편지 한장 써서 보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서로 만나고 헤어진 지 2달이 지났는데도 집사님에게 편지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요즈음이야 이메일도 있고 카톡도 있지만 그땐 이런 것이 보편화 되지 않았을 때였으니 일일이 편지를 써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국제전화를 해야 하는 그런 때였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에게 ‘그 선교비를 제공한 집사님이 이 돈을 선교비로 지불했다는 것에 대해 나를 믿지만 그래도 목사님이 보내는 감사의 편지는 영수기가 되는 게 아닌가. 이 편지 받으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집사님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주시기 바란다’면서 다시 교회주소와 집사님의 이름을 적어 보냈지만 그래도 편지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만, 그 선교단체에 선교비로 답지되는 헌금이 1년에 3억이 넘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그 목사가 감사의 편지를 보내지 않은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선교비가 그 정도 들어오는데 1백만원의 액수는 귀찮았을 것입니다. 그 선교단체에 전달된 1백만원은 소위 ‘껌값’에 해당하는 금액이라 이 돈을 받았는지도 모를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그 선교비를 전달한 나의 입장도 고려했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한 해 서울 사랑의 교회 수양관인 안성수양관에서 제자훈련 교육이 있어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수백 명이 모인 세미나였습니다. 그런데 스크린에 매우 익숙한 목사의 이름이 떴는데 현관에서 누가 찾는다는 광고였습니다. 그 선교단체를 담당한 목사였습니다. 현관에 나가서 기다렸더니 그 목사가 나타났습니다. 그가 만날 사람을 만나고 있을 때 자리를 지키고 섰다가 볼일 마친 그 목사를 불러 세웠습니다. “목사님, 저를 아시겠습니까?” 그 목사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혹스러워 하는 모습이 역역했습니다.
그 목사를 구석진 곳으로 데리고 가서 “우리 교인이 드린 선교비를 드렸을 때 교회주소와 그 집사님의 이름까지 적어드렸는데 그리고 편지는 물론 심지어 국제전화까지 해서 선교비를 잘 받았다는 편지 한 장 써서 보내달라고 그렇게도 부탁을 했는데 2년이 넘도록 편지를 보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듣기로는 당신이 운영하는 그 선교단체에 1년에 수억원의 선교비가 답지되는 걸로 들었는데 우리교인이 보낸 그 선교비는 미국거지가 보낸 껌값에 불과해서 그런가? 액수가 적어서 오히려 귀찮게 여겼나? 이 선교비는 내 돈으로 드린 게 아니라 집사님의 부탁으로 전달한 것인데 그렇다면 내가 부탁하지 않더라도 감사의 편지를 써 보내는 게 정상이 아닌가? 지금 당신과 내가 여기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오늘 여기서 당장 편지를 써 보내라. 내가 하와이 도착하면 당신이 보낸 편지가 우리교회에 도착해 있기를 바란다.”
이 선교단체에 얼마의 선교비를 보내야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수백, 수천 만원?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된 자’(눅16:10)라 하셨는데 작은 것에 충성하지 않고 큰 것을 바란다면 이치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작(적)은 것에 대한 감사가 없다면 그는 수 많은 감사와 감격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는 작(적)은 것에 대한 감사와 감탄할 수 있는 마음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은 것에 대한 감사를 잃지 않는 자들이말로 가장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시골교회 목사님들은 돈을 보내겠다고 했을 뿐인데 돈을 받기 전에 감사하다는 편지를 보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난한 자가 누리는 고마운 마음일 것입니다.
어느 한 해, 방글라데시를 행복지수(幸福指數)가 가장 높은 나라로 선정된 적이 있었습니다. 선정기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방글라데시 국민들은 우유 한팩만으로도 최고의 행복을 누린다고 했는데 나는 그해 방글라데시를 선정한 것에 동의했습니다. 그들이 우유 한팩으로 누리는 행복을 우리는 ‘저급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그것은 마치 ‘행운’을 뜻하는 네잎 크로바를 찾으려고 ‘행복’을 뜻하는 세잎 크로바를 짓밟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느 심리학자가 ‘지난 3일 동안 감격과 감탄이 없었다면, 먹고는 살았으나 그것은 동물적인 삶을 살았다’고 혹독하게 평가한 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작(적)은 것에 감동하는 자들은 가장 큰 혜택을 누리는 자들일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비운다면 그리고 그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면 우리 주변에 감사하지 않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살아 숨 쉬는 그 자체가 감사할 것입니다. 이같은 자에게 감동스럽지 않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내 주변에서 보이는 작은 것들을 통해 마음이 후끈거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숨이 막힐 지경이니 이 세상에서 나만큼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Covid-19가 창궐하는 이때 건강에 유의하시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게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유양진목사
버몬트연합감리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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