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이민목회지였던 콜림비아(SC)에서 6년간의 목회를 마치고 캘리포니아 싼타 바바라로 교회를 옮길 때 일주일 간의 일정으로 대륙횡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주차장에서 교인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옮겼습니다. 그때가 11월 초순이었는데 중학생이었던 큰아들 조셉이 친구들과의 헤어지는 그 순간을 원망이라도 하듯 훌쩍이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습니다. 울지마라 할 수도 없고 마음이 짠해지는 분위기를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훌쩍이는 모습을 엄마와 아빠, 그리고 동생에게 보이는 게 민망했는지 “아, 큰일 났네. 눈에 자꾸 먼지가 들어가네.” 그러면서 콜럼비아를 떠나 어거스타에 이를 때까지 차창 밖을 보며 눈물을 훔치는 조셉의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조셉에게 잘 못하는 것 같아 차를 돌리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오클라호마 Stillwater에 처제가 살고 있어서 하룻밤 머물고 다음 날 출발하려 했는데 밤새 진눈깨비가 내려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 원래의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 계획은 I-40번을 타고 캘리포니아로 들어가는 것으로 했는데 40번 길이 폐쇄된다는 뉴스를 듣고 텍사스 달라스를 거쳐 I-20번을 타고 가는 것으로 일정을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오클라호마에서 I-35번을 타고 내려오다가 달라스를 거쳐 20번을 타고 서쪽으로 가다보면 텍사스 주에서 27번 째 인구가 많다는 Abilene라는 도시에서 하루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날씨도 을씨년스럽고 정든 땅을 떠난 탓에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식사를 막 끝내고 몸을 좀 녹이기 위해 욕조에 물을 받아 몸을 담갔는데 조금 어지러운가 싶었는데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비몽사몽간에 눈에 들어오는 아내가 괴물 표정을 지은 상태에서 손바닥으로 혹은 주먹으로 나의 뺨과 코와 목덜미를 세차게 내려치고 있었습니다. 왜이러느냐고 물어 볼 힘조차 없었기에 저항할 수도 없었고 또한 영문도 모른채 일방적으로 얻어 터지고 있었습니다. 정신이 돌아오자 얼굴에 눈물로 범벅이 된 아내가 다급하게 울먹이면서 “이제 괜찮나? 정신이 돌아왔나?” 그 소리가 귀에 들리지마자 저녁에 먹었던 음식을 토해내고 나니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조셉과 데니얼은 구석에서 몸을 웅크린 채 울고 있고…
어떻게 된거냐고 물었더니 욕조에 들어갔는데 아무런 기척이 없어서 혹시나 하고 커튼을 열어보니 고개를 뒤로 젖힌채 입을 벌리고 혼절해 있기에 호텔로비에 전화해 놓고,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라 망설이고 있을 때 ‘피를 내면 살릴 수 있다’는 민간요법이 생각나서 피를 내려고, 즉 코피를 터트리기 위해 두둘겨 팼다는 것입니다. 이제 모든 상황이 정상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아직도 뺨과 목덜미 그리고 콧등은 얼얼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억울하게도 그렇게 심한 폭행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피가 나지 않았으니 나는 그냥 일방적으로 얻어 터지기만 했던 것입니다. 하마터면 객사할 뻔한 위기를 겪었지만 아내는 요즘도 가끔 수십 년 전 Abilene에서 일어난 그 일을 회상하면서 “아이고, 그때 좀 더 두들겨 패 놨어야 하는데…” 이러면서 꿈속을 헤멜 때가 있습니다. 나도 언젠가 그날의 복수를 해야할 텐데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런 기회가 없었는데 혹시 그런 기대되는 멋진 날이 나에게도 올랑가 몰라…
며칠 전 Taco Bell에서 아침을 먹고 앉아 있을 때 아내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기에 “왜? 당신 남편이 그렇게도 존경스럽고 사랑스러우십니까?”라고 물었더니 단번에 돌아온 말은 “니, 오늘 아침부터 나한테 한번 죽어볼래? 쓸데 없는 소리해서 분위기를 다 깨고 있네.” 아침부터 남의 식당에서 조용히 식사하는 손님들을 상관하지 않고 한바탕 크게 웃어보기도 했습니다. 현역으로 목회할 땐 나의 까칠한 성격과 물러설 줄 모르고 타협할 줄 모르는, 즉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목사를 뒷바라지 하느라 애먹었을 텐데… 그러나 우리보다 자유롭게 목회했던 이들도 드물 것이란 생각도 해 봅니다.
우리를 잘 아는 어느 선배목사님께서 “유목사, 이제 성질 다 죽었네!” 이 한 마디에 그 주변에서 폭소가 터졌지만 목회하는 동안 아내로 인해 어려움을 겪어본 적은 없었습니다. 만약 저 여자와 결혼하지 않았으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어느 교회에서 다른 교회로 파송이 결정된 다음 “목사님은 가시고 사모님은 남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내 앞에서 직접 말하는 교인들도 있었는데 처음엔 농담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진심이 담긴 말 같아서 마음이 무척 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40년이란 세월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데 뒤돌아보면 참 재미있게 살아 온 것으로 여겨집니다. 흉허물 없는 대화와 서로에게 부족함은 있어도 부끄러움이 없는 삶이 오늘을 있게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솔로몬은 ‘집과 재산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지만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서 주시는 선물’이라고 했는데(잠19:14) 이것은 내가 누리는 하늘의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경우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다투기 좋아하는 성미 고약한 여자와 함께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게 낫다’는 말씀과(잠21:19) 또한 ‘다투기를 좋아하는 여자는 비 오는 날 지붕에서 끊임없이 비가 새는 것과 같다’고도 했는데(잠27:15) 이런 경우라면 살아가는 날들이 피곤함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솔로몬은 현숙(賢淑)한 여인에 관한 자신의 경험을 잠언으로 남겨 놓았는데 여기에 옮겨 적습니다.
*** 누가 현숙한 아내를 얻겠느냐? 그녀는 진주보다 더 소중하다. 그런 여자의 남편은 아내를 믿기 때문에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런 여자는 일평생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남편을 해치지 않는다. 그녀는 양털과 삼을 구해 부지런히 일하며 상선(商船)처럼 먼 데서 양식을 가져오고 날이 밝기도 전에 일찍 일어나서 가족들을 위해 아침 식사를 준비하며 여종에게 할 일을 일러 주고 나가서 밭을 보고 생각해 두었다가 그것을 사며 자기가 번 돈으로 포도원을 만들고 언제나 강인하고 근면하며 열심히 일한다. 그녀는 자기가 하는 일이 유익한 줄 알고 밤 늦게까지 일을 하며 손수 물레질을 하여 실을 뽑고 베를 짜며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 준다. 그녀는 모든 가족에게 입힐 따뜻한 옷을 마련해 놓았으므로 겨울이 닥쳐도 염려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기 침실을 아름답게 꾸미며 아름답고 고운 모시 옷과 자색 옷을 입는다. 그리고 그 남편도 지도급 인사로 알려져 존경을 받게 된다. 그녀는 옷과 허리띠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넘기기도 한다. 그녀는 능력과 품위가 있고 앞날을 걱정하지 않으며 말을 지혜롭고 친절하게 하고 자기 집안 일을 잘 보살피며 놀고 먹지 않는다. 그 자녀들은 자기 어머니를 고맙게 생각하며 그 남편도 그녀에게 ‘세상에는 훌륭한 여성들이 많이 있지만 당신은 그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여성이오.’ 하고 칭찬한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지만 두려운 마음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여성은 칭찬을 받을 것이다. 그녀는 자기가 행한 일에 대한 보상을 받고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 것이다.(잠언31:10-31-현대인의 성경) ***
뜬금없이 아내자랑(?)으로 팔불출(八不出)을 자청한 것은 결혼 40주년을 자축하기 위해서 입니다. 나의 아내가 비록 다람쥐같이 생기긴 했으나(사실 다람쥐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세상에 그렇게 예쁠 수가 없지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분복(分福)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너에게 주신 덧없는 삶을 사는 동안 너는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인생을 즐겨라. 이것은 이 세상에서 네가 수고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 하셨는데(전9:9) 이 말씀들이 새해를 맞이하는 휴스턴에 거하시는 모든 아내들에게 적용되어지는 말씀이 되고, 지난 시간동안 남편다운 남편으로서의 삶을 살아보지 못했다면 2020년은 그것을 상쇄(相殺)하는 한 해(年)로 맞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유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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