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온 후 1995년에 처음으로 미국 밖으로 떠난 여행이 자마이카 Jamaica 이었다. 제주도 크기의 다섯 배, 인구는 3백만인 자그마한 섬나라 자마이카. 최근에는 육상선수 우사인 볼트 때문에 많이 알려졌지만 그 전에는 내가 지금 소개하는 밥 말리(1944-1981)가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여행 중 이틀은 비가 와서 비치에 나가지 못하고 호텔에 머물렀는데 커피샵에서 들려오는 노래가 온통 밥 말리가 부른 래게 (Reggae)음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돌아오면서 곱슬머리를 하고 있는 밥말리 카세트를 하나 사와서 잠시 들었지만 그 후로는 잊고 지냈다.
다시 내 기억에 밥 말리를 불러낸 것은 태권도장 썸머캠프에 아들을 데려오는 젊은 아빠 때문이다. 곱슬머리를 허리까지 길게 늘어 뜨리고 오길래 예술을 하는 분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수줍게 웃기만 하고 그 아들이 아빠가 자마이카에서 태어났는데 밥말리를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며칠동안 다시 밥 말리 음악을 듣게 되었는데 지금 소개하는 No woman, no cry 가 계속 입속에 맴돌았다. 이 노래는 마치 한국의 <아침이슬>처럼 오랫동안 저항가요로 불린 노래이다. 자마이카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대학가와 시위 현장에서 젊은이들이 이 노래를 46년이 지난 지금까지 부른다.
“안돼요 여자여, 울지 말아요. 트렌치타운 정부기관 마당에서 나는 우리가 앉아 있던 때를 기억해요. 우리가 만난 좋은 사람들과 섞여있는 위선자들을 나는 관찰했어요. 가는 도중에 우리가 가진 좋은 친구들. 오! 우리가 잃은 좋은 친구들
이 위대한 미래에 당신은 과거를 잊을 수 없어요. 그래서 당신은 눈물을 닦으라고 나는 말해요. 모든 것이 잘 될거에요, 모든 것이 다 잘될 거에요 이제는…”
트렌치타운은 흑인 노동자들이 살도록 정부가 마련해 준 빈민가이다. 거기서 옥수수 죽을 먹으며 가난을 견디던 여인에게 눈물을 닦으라고 말하는 가사이다. 자마이카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은 되었지만 국민은 돌보지 않고 권력을 위해 서로 싸우는 위정자들을 보면서 절망하는 국민들에게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Everything’s gonna be all right” 꿈을 심어주는 노래이다.
그의 백인 아버지는 10살 때 떠났고 그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14살에 학교를 중단하고 용접공으로 일했는데, 그러면서도 좋아하는 음악을 해서 17살에 스스로 작사 작곡한 4곡을 첫번째로 녹음했다. No Woman, No Cry는 그가 아내를 생각하며 쓴 곡이지만 이 세상에 고통받는 모든 여인에게 주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로 불리운다. 또한 이 세상에 여러 이유로 고통받는 여인이 꼭 흑인 뿐이겠는가?
밥 말리는 36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뇌종양으로 죽었는데 명언이라고 할 만한 좋은 말을 많이 남겨서 여기에 소개한다.
1) 음악이 좋은 한 가지 이유는 아픔을 잊게 한다는 겁니다. One good thing about music, when it hits you, You feel no pain.
2) 허브는 나라를 힐링하고, 알코올은 파괴합니다.
3) 흑인 편도 아니고, 백인 편도 아닙니다. 나는 그저 신의 편입니다.
4) 당신이 살고 있는 인생을 사랑하고, 당신이 사랑하는 인생을 사세요. Love the life you live, live the life you love
5) 사람의 위대함은 얼마나 많은 부를 얻었는가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진실됨과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조의석 목사
우드랜드 빛사랑교회 담임목사, 수필가.
저서: 수필집 <블루보넷 향기>(2010), 시집 <거듭남>(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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