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멕시코 남부관광도시 아카풀코.
1976년 아침, 호텔 베란다에 서 있던 나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황홀했다. 골프장 초원 너머로 보이는 하얀 백사장 앞 푸른 바다, 구름 한점 없는 가을 하늘, 상큼한 공기. 그림으로 흉내낼 수 없는 절경이었다.
푸짐한 아침식사 후 호텔에서 소개한 안내원을 따라 이곳 특산물을 구경하러 나섰다. 골목길 허술한 집에 이르러 안내인이 큰 자루를 메고 들어왔다. 테이블에 쏟아져 반짝거리는 보석들. 멕시칸 오팔이었다. 놀란 토끼같은 나의 작은 눈을 응시하면서 그는 무조건 골라보라는 것이었다. 백불 한 장뿐이라며 처음 고른 5개에서 “더, 더”를 연발하기에 20여 개를 골라 허리를 펴자 몇 개를 더 얹어주며 흥정은 끝났다. 이 순박하고 너그러운 인심. 그 처음 보는 귀물을 포켓속에서 촐랑이면서 나는 멕시코 이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곳이 지상낙원이라 생각했기에.
그 후로 멕시코시티, 칸쿤 등 몇 번 이 나라를 들락거렸지만 나의 생각은 변치않았다. 가능하면 멕시코에 살고 싶다는 달콤한 꿈을 키우며 35년여의 미국 허송세월 등 40여년을 흘려보냈다.
2년전 은퇴하면서 매니저에게 멕시코 자동차 여행 계획을 말했다. 침착하고 착한 멕시코 토박이 그녀는 벌떡 일어나 손사래를 치며 큰소리를 쏟아냈다. 멕시코 고속도로에 외국차량이 나타나면 바로 괴한들이 나타나 소지품을 털고 차를 뺏는 것은 물론 목숨까지도 위태롭다는 것이었다. 충격을 받은 나는 바로 멕시코를 뒤지기 시작했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각종 부정, 폭력, 마약, 살인 등 총체적으로 믿지못할 뉴스뿐이었다.
그중에서도 2013년 멕시코 지방도시에서 일어난 사범학교 학생 데모. 스승들의 부당한 봉급체제를 개선하라는 학생들의 정의로운 외침에 폭력배들이 지방경찰의 비호 아래 총을 들고 덮쳤다. 현장에서 6명이 살해됐고 43명이 납치됐다. 후에 학생들은 잔혹하게 살해됐고, 시체는 태워서 바다에 흔적없이 뿌려졌다는 것이 밝혀졌다. 1975년 8명의 서울대생들이 데모했다고 변호인도 없이 대법원에서 사형확정, 18시간만에 사형이 집행된 세계역사상 유례없는 사법 살인사건을 현장 근처에서 경험한 나로서도 너무도 잔혹하고 충격적인 사건들이 요즘 멕시코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지상 천국이라 생각됐던 멕시코가 왜 이리 됐을까? 그후로 나는 멕시코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으면서 여러 나라를 떠올리게 됐다.
최근 몇 년 동안 싱가포르를 두 번 여행했다. 80년 전 영국에서 독립할 때 국민소득 60여불의 최빈국에서 현재 6만달러가 넘는 부국이 될 때까지 지도자는 청렴과 애국정신으로, 국민은 지도자를 믿고 일치단결 오늘날을 이룩했다. 한국 등 여러 소국의 지도자들이 청렴하며 국익증진에 전력을 다하고, 국민이 단결하여 지도자를 밀어주면 곧 싱가포르와 같이 잘 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멕시코도 지도자가 청렴하게 국가봉사하고, 국민은 준법정신과 약속을 지키는 국민으로 지도자를 밀어준다면 하루아침에 이 나라는 부국이 될 것이 틀림없다. 여러 여건이 잘 갖춰진 나라이기 때문에. 중국은 “최강국으로는 아직 길이 멀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너무 탐욕스럽다는 것이다. 특히 주변국들을 괴롭혀 으르렁거리기 때문이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이웃과 평화스럽지 못하면 최강국이 되기 어렵다.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로마가 그랬고,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해질 날이 없다던 영국, 또 러시아연방이 꼭 같은 전철을 밟았다.
이제 미국도 오만을 버려야한다. 담 쌓기에 열중할 것이 아니고 멕시코가 일어나도록 도와야 한다. 멕시코는 준법정신만 확립하면 금방 강국이 될 것이고, 이를 미국이 도와야 한다. 담을 쌓거나 이민을 억지로 막을 것이 아니라, 지배하려 하지 말고 법을 지킨 나라로 벌떡 일어서도록 멕시코 출신 법집행관을 파견, 요소에서 법 집행을 감시, 감독하게 하는 것이다. 멕시코 정부와 협약을 체결, 멕시코 출신 미국 국민이 각 요소에서 감시 감독, 스페인 구각을 벗겨내고 법과 약속을 지키는 전체 분위기를 만들면 멀지 않은 장래에 장벽을 허무는 평화가 찾아오고, 미국은 세계 최강국으로 세세 번영을 누리게 될 것이다. 멕시코는 평화스러운 부국, 미국은 멕시코와 형제 이웃, 나는 아카풀코에 아담한 한 방짜리 콘도. 멕시코에 향한 나의 꿈이다.
심 송무 시인, (전 동아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