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라보고 있는 세상의 눈

이 세상에는 30억 개가 넘는 눈들이 쌍불을 켜고 그 누구를 응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 나를 향해 주목하고 있는 눈들도 있다. 그 눈빛은 경고를 알리는 노랑불도 켜있고, 위험을 알리는 빨간불도 켜있고, 안전을 알리는 파란불도 켜있으며, 그밖에도 헤아릴 수 없는 형형색색의 현란한 눈빛이 번뜩거리고 있다.
눈만 뜨면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빛 속에 쏟아져 나오는 저 따가운 시선들!
그들의 동태를 살펴보면 외로운 길을 함께 동행하려는 동반자도 있고, 막연하게 곁을 스쳐가며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방관자도 있고, 까닭을 알 수 없는 피해 의식이나 적대감, 또는 증오감을 가지고 상대방을 경계하면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눈도 있다.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흉악한 모습은 상대방의 고귀한 인격따위는 아예 짓밟아버리고, 상대방의 꼴을 보지 않으려 할 뿐 아니라 근거도 없는 험담까지 늘어놓으면서 그를 왕따시켜 공동체 사회에서 고립시킬뿐 아니라 함정에 빠뜨리려는 흉악한 모사꾼들도 있다. 결국 눈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어디나 거리마다 골목마다 눈의 걸작품이라고 할만한 온갖 인생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그들의 눈빛속에는 계절의 변화가 변칙적으로 일어나듯, 따스한 봄 햇살도 있고, 찌는듯이 들끓는 한 여름의 작렬하는 햇살도 있고, 서늘하고 상쾌한 가을도 있고. 매서운 냉기를 몰고 오는 겨울도 끼어있다.
때로는 장미꽃보다 더 아름다운 미소로 다가와 훈훈한 인정으로 절군 휴머니티가 흐르기도 하고, 때로는 굶주린 사자와 이리떼처럼 사나운 눈빛으로 다가와 온 몸을 잔뜩 웅크리게 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시궁창을 정연한 질서라고 우겨대는 지독스런 패러독스도 폐수처럼 눈빛을 타고 악취를 풍기며 흐른다.
그들은 좀처럼 아무와도 타협할 줄을 모른다. 그들에게는 편견이 판을 칠 뿐, 정견은 아예 찾아보기 힘들다. 오직 자기의 생각, 자기의 말만이 옳다고 고집하며 착각 속에 빠져 산다.
분명한 사실은 진실은 언제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결코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때가 되면 반드시 드러낸다. 그러나 인간의 눈빛속에는 미움, 증오, 혈기, 질투, 시기, 중상 모략, 흉악한 음모와 권모술수 등 온갖 형태의 볼품 사나운 모습이 자리잡고 인간 사회를 파괴하는 악재로 존재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왜 눈을 달아주었을까? 그 눈으로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며 살게 했을까? 눈의 역할은 인생의 행복, 불행을 좌우할 만큼 매우 중대하다. 그것을 안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연거푸 감탄사를 썼던대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그 눈빛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아름다운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아름다운 눈을 달고 다니기 위하여, 자신의 눈을 늘 점검하고, 보수하고 매무시해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자.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한 평생 아름다운 눈으로 상대방이 누가 되었던간에 다른 사람을 기쁘고 즐겁게 해준다해도 모자란 판에 왜 정열을 낭비하며 사는가!
미운 사람이 곁에 붙어있는 한 괴로움은 자기에게 돌아온다. 자기의 살을 깎고 뼈를 깎아야 하기 때문에 미운 눈빛이 사라지기 전에는 자기의 손실이 가장 크다. “원수도 사랑하라”는 것이 기독교의 정신이요, 뿌리가 아닌가.
눈빛은 우리 마음속에서 나온다. 우리의 마음을 고치기 전에는 눈빛은 스스로 바뀌지 않는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세상의 눈들을 보라. 그리고 나의 눈빛을 보라. 어느 편이든 흉한 눈빛은 아무도 볼 수 없도록 꺼라. 그리고 아름다운 눈빛으로 세상을 보라. 가정도, 사회도, 나라도, 온 세상이 어두워지고 불행에 빠지고 고통스러운 것은 우리가 달고 있는 눈빛을 통해서 결정된다.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며 사느냐에 따라서 나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
눈은 마음의 등불이요, 세상을 밝히는 제 2의 태양이다. 만일 나의 눈빛이 세상을 밝게 하기는 커녕, 어둡게하고 침해한다면 나는 세상의 허가나지 않은 파괴자다. 그러므로 그런 눈으로 산다면 나는 세상에 존재할 가치도 없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세상의 눈들을 생각하며 나부터 아름다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자. 그것이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라고 말하자.
유재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