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를 사는 지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최첨단의 과학 문명을 활짝 꽃 피워 낸 찬란하고 자랑스런 시대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교육 부재 시대를 맞아 가정 교육, 사회 교육, 정책 교육 등 모든 교육이 그 순수한 홍익인간의 교육 이념을 잃고 사람을 돈 만드는 기계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을 면치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예측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날로 거칠게 변질되어가는 세상을 살다보면, 간간이 공자, 맹자의 가르침이 절실히 요구될 때가 있다.
공자는 말하기를 “자식을 낳되 가르치지 아니하면 안 낳은 것만 못 하고, 자식을 가르치되 엄하지 않으면 안 가르친 것만 못하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한다면, 혹자는 ‘만일 공자가 이 시대에 산다면, 그는 굶어 죽기에 마땅하다’ 라고 반론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어딘지 모르게 시대적 모순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오늘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말 중에 심심찮게 ‘말세’라는 말을 흔히 듣곤 한다. ‘세상이 갈 데까지 다 가서 끝이 가깝다’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한심스럽고 측은하고 암담하기만 하다. 그저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러 보내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석연치 않다.
왜 이런 말이 오갈까? 그것은 여러가지로 이유가 있겠지만, 한 마디로 말해서 분명히 <교육 부재>의 산물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이 시대는 일반적으로 명문 대학을 나와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 남 부럽지 않게 보장된 삶을 살기 위한 삶의 방편 내지는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날이 갈수록 각박해져 가는 세상살이가 그렇게 교육의 순수성마저 잃어버린 결과를 초래했다고 본다. 그러다보니 사람 사는 동네는 저 시베리아 벌판처럼 냉랭한 찬 바람이 불어 닥쳐와 숨통을 막아으며 끝내 이기주의 개인주의로 깊숙히 빠져들어 아름다운 공동체 사회의 모습이 보기 좋게 무너져버린지 오래다. 그만큼 살아나기에 급급한 나머지 이기주의 개인주의가 팽배해지고, 모든 가정 질서, 사회 질서, 윤리 도덕, 공중 도덕, 사제 간의 도리, 부자 간의 도리나, 형제 간의 우애 등등, 모든 사회 질서가 파괴되어 사람 사는 맛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돌이켜 보면, 보리 고개를 넘기며, 목숨마저 지탱하기 어려웠던 전쟁의 와중에도 이웃 상호간에 따뜻하고 정겨운 대화가 오갈 뿐 아니라, 지극히 보잘것 없는 적은 빵 한 조각이라도 서로 나눠 먹으며 이웃을 돌아보며 함께 어울려 살던 그 때의 후덕스런 인간 애가 마냥 그립기만 하다.
이대로 세상을 수동적으로 따라가야만 할 것인가? 사람 사는 세상을 조금씩이라도 지혜를 모아 능동적으로 바꿔 나갈 수는 없을까? 생각하면 난처하고 착잡하기만 하다.
그러나 결코 포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삶의 지혜를 모을 수 있는 한 모아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라도 사람답게 잘 살 수 있도록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유산으로 남겨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가난해도 좋다. 병들어도 좋다. 아무리 세상이 어지럽고 힘들어도 좋다. 사람이 사람답게만 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것이 어디 있으랴!
왜 교육 수준이 높아질수록 살기가 더 이렇게 어려워질까?
왜 경제적 부요를 누리면 누릴수록 더 살 맛을 잃어버릴까?
성경이 말하듯 배불리 육식을 먹으며 다투고 지지고 볶고 사는 것 보다 차라리 채소를 먹을지라도 화평을 누리며 사는 편이 훨씬 더 살찔 것 같다. 그렇다고 일부러 가난을 자초할 필요는 없다.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풍요로우면 풍요로운대로 지혜롭게 살면 되는 것이 아닌가!
미국 이민 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종종 예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삶의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대부분의 많은 미국 사람들은 노년기를 맞아 임종이 가까우면 자기의 재산을 자손들에게 대물림 하지 않고 국고에 헌납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할 수 있는 한 세금을 많이 내고 노후에 국가로부터 베니핏을 받아 보장된 삶을 누리겠다는 그들의 의식도 다른 면모 중의 하나다. 국가로부터 보장된 삶을 사는 것이다. 어떻게든지 많은 재물을 긁어 모아 치부를 누리기보다는 내면적인 풍요를 누리며 사는 삶의 지혜가 더욱 필요하다. 생활이 아무리 바쁘고 고달프고 힘들지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삶의 지혜를 얻어야 할 것이다.
<차털레이 부인의 사랑>에서 D.H. 로랜스는 “혼돈이 오면 이성이 재빨리와서 질서를 잡는다”라고 했다. 그렇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칼트의 말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고 생각하면서 삶의 지혜를 얻어 보다 밝은 내일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사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재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