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출산 잡으려다 해외동포 2세 잡던 홍준표법 ‘헌법불합치’ 철퇴
복잡한 국적이탈 신고 절차도 현실화

By 변성주 기자
kjhou2000@yahoo.com
재외동포 자녀들의 발목을 잡고 있던 일명 ‘홍준표법’이 폐지된다.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지난 9월 24일(목) 오후 2시(한국 시간) 선천적 복수국적자 크리스토퍼 멀베이(Christopher Mulvey, Jr.)의 헌법소원 심판청구에 대해 재판관 7:2 결정으로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지난 2015년 제 4차 헌법소원에서 재판관 5:4 로 합헌 결정이 났었지만 불복하지 않고 도전해서 이룬 쾌거다. 이번 결정은 국적법 중 병역준비역에 편입된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국적이탈을 제한하는 조항(제12조 제2항 본문 및 제14조 제1항 단서 중 제12조 본문에 관한 부분)이 청구인의 국적이탈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여 위헌임을 명시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다만, 헌법재판소는 법률의 공백을 막기 위해 ‘위헌’ 결정이 아닌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2022년 9월 30일까지 개선입법을 명령했으며, 그 때까지 입법이 되지 아니하면 2022년 10월 1일부터 그 효력을 잃게 된다.
헌법소원 청구인 멀베이는 출생 당시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영주권자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대한민국 국적과 미국 국적을 동시에 갖게 되었다. 한국 호적에 올라간 적도, 한국에서 살 의도도 없이 미국에 생활기반을 두고 살아가는 선천적 복수국적자였다.
국적법 제12조(복수국적자의 국적선택의무) 제 2항 및 제14조 제1항 단서에 의하면, 멀베이와 같은 남성 선천적 복수국적자들은 병역준비역에 편입되는 만 18세가 되는 해의 3월 31일까지 국적선택을 해야 하고, 그 때까지 한국 국적 이탈을 하지 아니할 경우 병역의무를 이행하거나 38세가 되어 병역이 면제되지 않는 한 한국 국적 이탈을 할 수 없다.
이번 5차 헌법소원에서, 헌법재판소는 주된 생활 근거를 한국에 두면서 한국 국적자로서의 혜택을 누리다가 병역의무만을 면하고자 하는 선천적 복수국적자와 달리, 멀베이와 같이 주된 생활의 근거를 외국에 두고 한국 국적자로서 혜택을 누리지 않고 있는 선천적 복수국적자들에게 일률적으로 국적이탈에 제한을 가하는 국적법 조항에 대해 위헌성을 인정했다.
한인 2세들은 국적이탈 절차는 물론 한국 국적을 보유한 선천적 복수국적자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고, 이에 관한 한국 정부의 개별 통지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국적법이 한국 국적의 부 또는 모로부터 출생한 사람은 당연히 대한민국 국적 취득이 되므로 속지주의를 취하는 국가의 국적 혹은 멀베이처럼 부모 한 쪽이 외국인인 경우는 법의 사각지대에서 피해 대상이 되었다. 선천적 복수국적을 가진 미주 한인2세들은 38세가 될 때까지 미국의 공직진출 등에 장애를 받아왔다.
불필요한 국적이탈 융통성 있게 적용
이번 결정은 ‘병역의무 이행의 공평성 확보’라는 확고한 목적 하에서,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남성 복수국적자는 18세가 되는 해 3월 31일 이후 병역의무를 해소하기 전에는 어떤 예외도 인정하지 않았다가 예외적 경우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헌법재판소는 복수국적을 해소하지 못함으로 인해 공직 등 업무를 담당할 수 없게 되는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사익침해를 가볍게 볼 수 없다고 명시했다. 지난 판결에서는 다소 사익침해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극히 우연적인 사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단했었다.
이번 판결에서 헌재는 “단순위헌결정을 할 경우 효력이 즉시 상실되면, 국적선택이나 국적이탈에 대한 기간 제한이 정당한 경우에도 제한이 즉시 사라지게 되어 병역의무의 공평성 확보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며, 향후 2년 내(2022.9.30.) 개선 입법을 명령했고, 그때까지 개선입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2022년 10월 1일부터 그 효력을 잃는다고 판결했다.
멀베이의 변호사로서 사실상 선천적 복수국적의 부당함을 위해 법정에서 싸우며 4전 5기의 정신으로 다섯 차례도전 끝에, 7년 만에 승소를 이끈 이민전문 전종준 변호사(위싱턴 로펌 대표)는 “이번 결정으로 한인 2세, 3세들이 미국사회의 중요기관인 연방정부나 주정부, 육해공군 사관학교 등에 불이익 없이 진출하고, 나아가 25세부터 가능한 연방 하원의원, 30세부터 가능한 상원의원, 35세부터 가능한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하여 ‘한국계 오바마’가 탄생할 수 있는 초석이 마련되었다”고 의의를 전했다.
향후 국회의 입법 방향에 대해 전 변호사는 “원정출산과 병역기피와 관련 없는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경우에는 18세가 될 때 한국국적 자동 말소를 법제화하고, 또한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조부모나 부모에 의해 한국 호적에 올라가 있는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경우는 언제든지 국적이탈을 할 수 있도록 제도화가 됫받침 되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전종준 변호사는 5차에 걸친 헌법소원을 모두 무료 봉사로 진행했다. 그는 “그동안 미주한인동포들의 뜨거운 성원과 각 언론의 대대적인 협조 등으로 국가와 사회의 관심을 이끌어 낸 역사적인 업적이다”라고 공을 돌리면서, “900만 해외동포 2세들에게 새로운 세계화의 문을 열어주게 되어 한국의 국익 뿐만아니라 해외동포의 권익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매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다”라고 밝혔다. 아직까지 휴스턴총영사관은 이에 관한 외교부나 법무부 지침은 받지 않은 상태다.
입양인 시민권법 새 이정표
한편 미국 의회도 116회기(2019-2020)를 불과 몇 개월 남긴 시점에서 입양인 시민권법( H.R.2731)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만한 진전이 있었다. 입양인 시민권법은 2015년(114회기)와 2017년(115회기) 2번 도입되었다가 번번이 채택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회기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지난 9월 23일 하원의회 이민 및 시민권 사법소위원회 청문회에 성명서를 제출했다. 입양인 시민권법이 이 단계에 도달한 것도 처음이고, 이를 위해 Adoptees For Justice 와 미교협(NAKASEC) 등 관련 단체와 시민단체들은 남은 기간 동안 온라인 캠페인과 교육을 적극 펼치고 있다. 입양인 시민권법은 입양시기에 관계없이 모든 국제 입양인에게 미국 시민권을 소급 부여하여 1982년 이전에 태어나 2000년 아동시민권법(CCA)의 보호를 받지 못한 수천 명의 입양인을 구제하도록 한 법안이다. 현재 미국 시민권이 확인되지 않은 한인 입양인만 1만 9천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수많은 입양인들이 법의 사각지대 변방에 놓여 운전면허를 얻거나 투표, 합법적인 직장을 가질 수 없고, 추방될 경우 문화, 언어적 충격으로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
한편 이번 회기에서 입양인 시민권법안을 지지하는 의원은 총 85명으로 늘어났는데, 이중에는 캘리포니아가 14명으로 가장 많고 일리노이주 8명, 그리고 텍사스 주도 7명의 의원 지지를 확보하며 뉴욕(6명), 워싱턴(5명), 뉴저지(3명)를 앞섰다. 또한 민주당 54명, 공화당 31명을 확보함으로서 초당적인 지지와 후원을 받고 있음도 확인됐다. 비록 이번 회기에도 법안 채택이 되지 못하더라도 초당적 지지 및 한 단계 진일보한 역사적 기록은 다음 회기 4번째 도전장에 힘과 탄력을 실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