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용사 73년 만에 신원 확인하고 고향땅에 묻힌다
By 변성주 기자
kjhou2000@yahoo.com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월 26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양국 정상이 내세운 주제는 단연코 굳건한 한미동맹이었다. 특히 올해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자유를 위해 싸운 한국전 참전용사에 대한 경의와 그들의 값진 희생을 다시 한 번 추모했다.
“한국전 참전용사들은 오늘 여기 두 민주주의 국가가 설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들 때문에 우리는 강하고, 자랑스럽고, 또 자유롭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특별히 한 참전용사의 이름을 거론했다.
1950년 9월 1일 전사된 것으로 추정되는 상병 루터 스토리(Luther Story)가 그 주인공이다. 19세의 나이로 한국전쟁에서 전사하고 사후 명예훈장을 받은 루터 스토리가 드디어 그의 조국으로 귀국하게 되는데, 스토리의 유해는 그가 전사한 것으로 보고된 지 73년 후인 지난 4월 6일 발견됐다. 이 소식은 양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공동성명 자리에서 처음 발표되었다.


부상 중에도 동료 병사 위해 끝까지 싸웠던 19세 청년
1950년 8월 주한미군은 낙동강 동쪽 기슭을 따라 부산과 영산 마을 주변의 방어 진형인 부산 경계선을 따라 주로 배치됐다고 백악관 성명은 밝혔다. 8월 31일, 제2보병사단 제9보병연대 제1대대원들은 북한 인민군 3개 사단의 대규모 공격을 정면으로 맞았다. 조지아주 출신인 스토리는 일등병이자 화기분대장으로 초기 공격 저지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고 막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위치로 분대를 이동하던 중 대규모 적군 전투기를 발견했다.
부상당한 포수에게서 기관총을 빼앗아 적군 종대에 치명적인 사격을 가해 약 100명의 적군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고 그의 훈장 인용문에 쓰여 있다고 했다.
중대장이 병사들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을 때, 스토리 일병은 병력을 실은 적 트럭과 탄약 트레일러를 견인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동료들에게 몸을 숨길 것을 경고하고 두려움 없이 길 한가운데 서서 트럭에 수류탄을 던졌고 추가 수류탄을 모아 차량을 다시 공격했다고 당시 젊은 병사의 용감한 사투가 적혀있다. 결국 그는 부상을 입었지만 이를 무시한 채 계속 싸웠다고 한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부상으로 동료 병사들의 속도가 느려질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고 스스로 뒤에 남아 중대 철수를 엄호했다.
“마지막으로 목격되었을 때 그는 사용 가능한 모든 무기를 발사하고 또 다른 적대적인 공격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고 동료 병사들은 그를 기억했다고 한다.
전투 후 스토리의 유해는 발견되거나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 백악관 성명에 따르면 그는 포로로 잡힌 것으로 기록되지도 않았다.
백악관에 따르면, 2021년 6월 하와이 국립태평양기념묘지에서 미확인 한국전 전사자 652명을 발굴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국방부 포로/실종자(POW/MIA) 확인기관은 남한 상대포 인근에서 수습된 유해의 신원 확인 작업을 시작했다. 과학자들은 치아 및 인류학적 분석,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을 통해 최종적으로 신원 미상의 유골이 루터 스토리 상병의 것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루터 스토리의 유해는 5월 말 그의 고향 조지아주 앤더슨빌에 묻히게 된다.
바이든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은 공동성명에서 “루터 스토리 상병의 숭고한 희생과 영웅적 행위는 오늘날 한국 국민이 누리는 자유와 안보, 번영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양국은 육군 상병이야기처럼 작전 중 실종된 장병들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