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마티 바덴(Marty Baden)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유주의적 사상이 있다고 해서 극보수파에서 밀려나 젊은 시절에 고생 많이 한 정치가였습니다.한 번은 어느 지방에 여행을 갔다가 돈이 없어 값싼 여관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답니다. 아침에 깨어보니 그의 구두가 없어졌습니다. 도둑을 맞은 것이었습니다. 화가 잔뜩 나서 어느 누가 내 신발을 훔쳐 갔느냐고 욕을 하였습니다.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나같이 가난한 사람의 신발을 훔쳐 가게 하시다니’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마침 주일이라 친구가 소식을 듣고 헌 신발을 주면서 교회를 가자고 해서 기분이 별로지만 끌려가는 기분으로 교회를 갔답니다. 그때 교회 의자에 앉아 예배 드리는 사람 가운데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조용히 하는 기도지만 귀에 들려서 들어 보았답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연발하면서 감사 기도를 드리고 있더랍니다. 그때 그 젊은 정치가 마티 바덴은 마음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답니다.‘저기 저사람은 신발을 잃어버린 정도가 아니고 두 다리를 전부 잃어버렸으니, 신발이 있어도 신발을 신을 수 없구나. 나는 신발만 잃어버렸으니 신발이야 또 사서 신으면 되지만 그렇게 남을 저주하고 하나님까지 원망했으니…’하며 회개하고 그로부터 마티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 감사생활로 변했습니다. 항상 감사할 것을 찾았습니다.마침내 그는 국민의 존경을 받는 재무장관이 되어 국가에 크게 봉사하는 정치가로서 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감사는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본문 소제목
우리의 인생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불만에 가득 차있으면 인생을 과연 즐겁고 복되게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노예 근성을 버려야 합니다. 노예는 아무리 좋은 것을 주어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노예나 머슴은 감사가 없습니다. 내가 수고한 대가를 당연히 받은 것이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일 할 수 있는 직장이나 건강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가 없는 것이지요. 그는 돈 벌기 위하여 일하는 것 뿐입니다. 보수의식을 가진 사람에게는 감사가 없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본문 소제목
바울은 서신을 통해서 편지 서두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살전 4:3)
베드로는,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벧전 3:7)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하면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이니라. (살전 5:18)
하나님의 뜻을 오용하지도 말고 남용하지도 말고, 정말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확실하고 분명하게, 다른 것은 기억치 못한다고 해도 범사에 감사하라는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극심한 핍박과 환난이 있었습니다. 바울 일행이 핍박을 받았던 것처럼 유대인들에 의하여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극심한 환난 가운데 고통 받고 있는 성도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사에 감사해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위로의 편지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생각의 위로는 ‘걱정하지 말아라.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이다.’라고 생각하는데 바울은 그런 말로 위로하지 않았습니다. 환란과 핍박중입니다. 그런데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성령을 소멸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에게 전한 말씀을 기억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진정한 위로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도 환란과 핍박을 수없이 경험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40에 하나 감한 매를 5번 맞았습니다. 3번은 태장으로 맞았습니다. 크게 3번의 전도 여행을 통해서 강도도 만났고, 유대인 이방인의 위험. 강, 시내, 바다의 위험. 잠도 자지도 못하고 굶주리고 춥고 헐벗고 감옥에도 갔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믿는 성도들의 사람의 모델입니다.
조금만 힘들면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이 우리들의 모습 아닌가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텐데 기다리지 못한 것이지요. 목마르다 불평하고 길이 험하다고 불평하고 애굽에서 먹던 음식 먹고 싶다고 불평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해서 불평하고…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이다. 노르웨이에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에는 사탄이 씨앗을 뿌릴 수 없다’ 사탄은 우리에게 미움, 다툼, 시기, 질투, 슬픔, 아픔 등 악한 씨앗을 뿌립니다. 그래서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합니다.
조건에 따라 감사가 달라지는 것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감사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주실 은혜를 확신하며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때론 아프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내던져 주심도 감사합니다. 주님과 가까워지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일이 계획대로 안되게 틀어주심도 감사합니다. 저의 교만을 반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데 힘겹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눈물로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인생의 메뉴판에 감사, 원망, 불평, 슬픔, 탄식, 시기, 질투, 기쁨, 찬양, 은혜, 천국, 지옥 등등… 인생은 선택입니다. 나의 선택입니다. 멋진 인생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