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피해자들도 속출… 7차 헌법소원 시작
美 출생 여성자녀의 이중국적문제 등한시

By 변성주 기자
kjhou2000@yahoo.com
2021년 8월 18일 대한민국 헌법 재판소에 선천적 복수국적에 대한 7차 헌법 소원이 접수됐다.
대한민국을 상대로 8년 째 선천적 복수국적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 워싱턴 DC 전종준 이민전문 변호사는 이미 지난 5차 헌법소원에서 원정출산과 이민출산을 구분하지 못한 홍준표 법의 위헌성에 대해 4전 5기 끝에 헌법 불합치 소원 승소판결을 받았다. 이에 따라 요지부동이었던 선천적 복수국적법은 2022년 9월 30일까지 새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
5차 헌법소원 당시 법무부 주관 2018년 재외동포 설문조사에서 해외동포의 80%가 사실상 선천적 복수국적에 관한 제도를 최근까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자료가 제출됐고, 2020년 헌재는 “개별 통지가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5차까지의 헌법 소원은 선천적 복수국적으로 피해를 본 남성을 위한 헌법소원이었다. 이제 한인 2, 3세 여성들이 이중국적의 불이익을 받는 경우를 구제하고 해결해주기 위한 헌법소원이 6차에 이어 7차로 이어지고 있다.
6차 헌법소원은, 한인 2세 엘리아 리 씨가 미 공군입대 신청 과정에서 신원조회시 이중국적을 한 적이 있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당연히 “No”라고 답했는데, 우연히 선천적 복수국적 사실을 부모로부터 알게 되면서 거짓진술에 대한 부담감에 입대를 자진 포기했던 사례가 6차 헌법소원으로 이어졌다.
허위진술자 낙인 치명적
지난 2010년 한국 국적법이 국적자동상실제도가 폐지되면서 이런 불이익은 병역 의무가 없는 여성에게도 파급되고 있다. 즉 2010년 전에는 미국에서 태어난 여성 시민권자는 한국국적을 선택하지 않으면 자동 상실이 됐었다. 그러나 법 폐지로 선천적 복수국적 여성에게도 국적이탈 의무가 부여된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 미국에서 태어난 여성들이나 부모들도 이 사실을 잘 모르고 있고, 한국 정부도 적극 홍보하지 않고 있는것이 문제다.
이제 한인 2세 혹은 3세가 해외에서 공직이나 정계에 진출할 때 만약 한국의 국적법 때문에 이중국적자가 되는 문제는 남녀를 불문하고 중요한 이슈로 인식해야 한다. 지금 당장 상관없는 일일 수 있지만 곧 현실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7차 헌법소원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 명문대학에 다니는 한국계 여성 재학생이 서울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입학하게 됐다. 한 학기 동안 한국문화와 언어도 배우며 모국에 머무를 계획이었다. 그러나 영사관으로부터 선천적 복수국적자이므로 외국인 교환학생 비자를 받을 수 없고 한국여권으로 가야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 여학생이 출생할 당시 아버지는 미국인이었고, 어머니는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부모 중 한 사람이 한국인이어서 한국 국적이 자동부여된 것이다.
여학생은 국적이탈을 우선 시도했지만 국적이탈을 위해서는 한국에 먼저 출생신고를 해야 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이혼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여권이나 신원에 대한 정보를 제출하지 않고는 출생신고도 할 수 없었다. 올해 만 18세가 되는 성인이 됨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연락이 닿지 않으면 국적이탈도 불가능했다. 그렇게 7차 헌법소원이 위 사례로 청구됐다.
모르고 있는 경우 대부분
전종준 변호사가 선천적 복수국적법을 문제 삼을 당시만 해도 재외동포사회는 이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원정출산 등의 법의 취지와 달리 재외동포 자녀들의 피해 사실이 드러나면서,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피해자들의 제보와 격려 속에 헌법소원이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고 승소까지 이끌어냈다. 7차 소원까지 전종준 변호사는 프로보노(Pro Bono) 즉 무료 변론으로 해오고 있으며 주변의 뜻있는 변호사들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헌법불일치 판결까지 오랜 기간이 걸렸던 이유 중 하나는 선천적 복수국적법 헌법 소원이 한국에 군대 안가고 혜택만 받으려고 한다는 식의 부정적 국민 정서가 지배적이었고, 해외동포들이 전부 한국에 오려는 거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도 많았다고 한다.
미국에서 허위진술은 치명적일 수 있는데, 지금에 와서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일부 “그냥 놔두었으면 아무도 모를 것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고 탓하는 부모들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법에 의해 한인 2세, 3세가 이중국적자가 되고 있는 경우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쉬쉬하며 덮고 있는 케이스들도 상당히 많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러나 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선천적 복수국적의 피해를 막기 위해 국적 이탈의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미리 서류 준비를 해야 할 것이고, 특히 여자 자녀의 경우도 예외가 되지 않도록 재외국민들에 적극적인 안내와 계몽이 필요하다.
지난 해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법무부는 ‘예외적 국적이탈 허가제’에 관한 입법예고를 했다. 그러나 개정안 역시 공직 진출을 위한 인터뷰나 신원조회서에 복수국적자인지 여부를 당장 표시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을 모른 채, 절차적 복잡성과 처리기간의 장기화로 인해 침해된 권리를 구제하는데 실질적 효과가 없다고 전종준 변호사는 지적했다.
더욱이 헌재와 법무부는 아직도 부모의 이혼, 배우자 사망 및 외국인 부나 모 등의 경우 국적이탈이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을 무시하고 있어 위헌의 소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복수국적의 회오리로 한인 2세가 정계나 공직을 사퇴하는 등 불상사가 터지기 전에 신속한 대체입법이 절실히 요구된다.
6차 헌법 소원은 청구기간 90일이 지났다는 이유로 각하 결정이 내려졌다. 7차 헌법 소원은 몇 주 뒤 헌법재판소에서 사전심사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사전 심사 여부에 따라 본안 심리 여부도 결정될 것이다. 이번 7차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어떤 처리를 할지 주목되는 이유다.
한인자녀세대들의 발목을 잡는 ‘선천적 복수국적법’의 피해를 막기 위해 동포사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문제의식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