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물과 좌절 딛고 수석 졸업 영예
■ 많은 장벽과 어려움 직면한 한인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희망 메시지

By 변성주 기자
kjhou2000@yahoo.com
3대에 걸쳐 자유 민주주의와 평화 수호를 위해 묵묵히 군인의 길을 택했던, 휴스턴에 뿌리를 둔 어느 한인가정의 이야기를 함께 나눈다.
해병대 출신 조부 故 김창수 님은 6.25 전쟁 때 미군 통역장교로 전투에 참여했고, 아들 시드니 김 대령(은퇴)은 미 해군 내 최초의 한인 대령이자 30년 이상 현역 군인으로 근무하면서 동부지역 17개 주 관할 해군병참사령관도 역임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23일 텍사스 Laughlin AFB에서는 3대 조슈아 김(Joshua Kim) 대위가 공군 조종사 훈련 프로그램을 수료하고 F-16 전투기 조종사로 거듭났다.
자동차 운전을 위해 운전면허증이 필요하듯 항공기 조종에도 면허증은 필수다. 그런데 공군 조종사는 더욱 특별한 인증이 필요하다. 하늘의 조종자격증, 공군 조종사들의 가슴에 달린 명예로운 은빛조종흉장(Silver Wing)이 바로 이를 증명한다. 이날 조슈아 김 대위는 꿈에 그리던 공군 전투기 조종흉장을 아버지 시드니 김 대령과 어머니가 직접 가슴에 달아주었다.
그런데 이 명예로운 은빛조종흉장 뒤에는 눈물겨운 도전과 노력이 숨어 있었다.

세 번의 도전 끝 성공
어려서부터 유난히 비행기를 좋아해 게임도 비행 조종 게임만 했다는 조슈아 김 대위는 부친의 복무지를 따라 스페인, 한국 등 해외 학교를 여러번 옮겨 다녔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3번이나 전학했지만 워낙 말수가 적고 조용한 김 대위의 학업성적은 늘 우수했다고 한다. 해군사관학교와 공군사관학교, 그리고 UCLA에서 모두 대학 입학통지를 받은 후, 고민 끝에 4년 전액 장학금을 지원해주기로 한 UCLA 공군 ROTC 프로그램에 입학해 항공엔지니어를 전공했다. 졸업 1년 전 이미 조종사 프로그램을 수료하며 그의 앞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그러나 공군 훈련소로 가기 직전 받은 신체검사에서 시력 문제로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양쪽 눈 모두 시력은 2.0이었지만 레이저 수술을 받은 것이 실력 사유가 된 것이었다. 실제로 공중 근무자는 신체검사 이전에 시력교정술을 받은 경우 불합격 사유가 된다. 한순간에 꿈이 무너져버렸던 조슈아 김 대위에게 당시의 충격은 생(生)의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그러나 “인생에 다른 선택도 있다”, “꿈이 이뤄지지 않아도 지금 심어진 곳에서 활짝 피면 된다(Bloom where you are planted)”는 말로 위로해주셨던 부모님의 격려 속에서 파일럿 대신 공군 대학원에 진학해 항공엔지니어 석사과정을 마쳤다. 그러나 공군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동안에도 조슈아 대위는 공군 조종사의 꿈을 결코 버리지 않았다. 두 번째 재도전을 했으나 역시 신체검사에서 같은 이유로 실격 처리됐다. 마지막이라 여기며 지원했던 세 번째 도전, 결국 그의 인내와 끈기, 꿈을 향한 식지 않는 열정은 공군의 엄격한 규정을 통과했다. 이후 김 대위는 텍사스 국경 부근에 위치한 부대에서 약 2년간의 비행교육 고등과정에 들어갔는데, 기쁨도 잠시 마지막 13개월 간 강도 높은 훈련과 시험들은 또 하나의 큰 산이었다. 25%만 살아남는 훈련 과정에서 당연히 중간에 낙오자도 많았고 매순간마다 통과(Pass)와 탈락(Fail)의 기로에서 극심한 압박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다. 수료식 날 당일까지도 가족과 본인조차 최종 공군 조종사 시험 통과 여부를 알지 못한 채 ‘최선을 다한 것에 만족하자’고 서로를 다독였다고 한다.
그러나 조슈아 김 대위는 꿈에 그리던 공군 조종사가 된 것은 물론, 수송기와 전투기 중에서도 자신이 원하던 F-16 전투기 조종사를 명령받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수석 졸업의 영예도 함께 안은 것이다. 마지막 테스트를 짙은 안개 속 악천후에서 치루면서 시험 통과를 자신하지 못했기에 온가족은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감동을 경험했다고 한다.
한편 휴스턴대학에서 화공학을 전공했던 부친 시드니 김 대령은 취업을 고민하던 중 교수의 권유로 우연히 군인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현재는 미 해군에서 퇴역한 후 30년 간 수학 교육자로서 활동했던 아내 헬렌 김 씨와 캘리포니아 샌디에고에서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모친 이의정 권사(한빛장로교회)와 형제자매들이 살고 있는 이곳 휴스턴은 좋은 기억들과 정겨움이 가득한 그의 고향이다. 이제 자랑스런 아들이 군인 가족의 대를 잇고 있지만, 공군전투기 조종사가 된 장남을 바라보는 마음 한편은 늘 조마조마한 마음도 있다. 바로 며칠 전에도 비행훈련을 하던 두 명의 여성 파일럿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아들로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 엘리트 공군 인력의 엄격한 훈련 과정을 통과한 아들의 일을 단지 자랑거리로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진짜 이유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장벽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과 인내가 다른 한인동포 젊은이들과 차세대들에게 긍정의 에너지로 전달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때문이다”라고 말했다.